REFILL
리필되요?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겠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뭔가 먹먹한 심정으로 태국에서 한국으로 날아왔다. 그리고는 장례식장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이 일 저 일을 도와 드리고는 있었지만, 뭔가 실감이 나지가 않았다. 저 위에 올려진 영정 사진에서 웃고계신 할아버지만 뵈었을 뿐, 할아버지의 돌아가신 모습을 아직 보지는 못했었다. 그냥 명절 같은 때 가족이 다 모였는데 할아버지가 몸이 좀 편찮으셔서 방에 계속 계신 그런 기분이랄까?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맞는지 얼굴을 확인한다고 상주인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확인하러 갈 때 따라 올라가서는, 냉장고에서 잠시 꺼내어 얼굴까지 씌워진 천을 살짝 거뒀을 때 본 할아버지 얼굴. 아버지는 바로 맞다라고 하고 다시 할아버지는 그 냉장고 속으로 들어갔다. 그 때도 뭔가 그리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점심때가 되어 할아버지 입관식을 한다고 하여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등 가족이 입관식 하는 장소로 갔다. 나는 할머니를 모시고 가느라 약간 늦게 그 자리에 갔는데, 상조회에서 나온 팀장님이라 하는 분이 할아버지에게 화장도 하고 머리도 만져드리고 옷도 입혀드리면서 가족들에게 인사할 시간을 주고 있었다. 막상 할아버지가 누워계시고 손이 나와 있는데, 손을 만지니 차가웠다. 살결은 부드러워서 그대로 인것 같은데, 온기가 하나도 없었다. 뭔가 슬픔 감정이 확 몰려오고 할아버지가 그간 나를 얼마나 예뻐하셨는지, 귀하게 여기셨는지 그런 생각인지 감정인지 기분인지 모를 것들이 스스슥 스쳐 지나갔다. 그간 할아버지에게 잘 해드리지 못한것들이 안타까웠고, 자주 찾아뵙지 못한것, 용돈 한 번 넉넉히 드리지 못한것... 그런 것들이 생각이 나면서 너무 죄송스러웠다. 안타까웠다. 할아버지가 지금 들으실 수 있다면 그런것들을 다 말씀 드리고 할아버지께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이제 들을 수 없는 상태. 지금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직 정상적으로 남아있을 때 할아버지께 말하지 않으면 영영 못할것 같아 천으로 가려진 할아버지의 얼굴을 부여잡고 할아버지 귀에다가 죄송하다고, 해드린것이 없다고 하며 눈물을 쏟았다.


할머니와 작은어머니 작은아버지도 할아버지를 부여잡고 중간중간 우시면서 하지 못한 말씀들을 하시곤 했다. 그럴때마다 아버지는 그만들 하시라고, 됐다고... 나에게도 "니가 할아버지 교회 모시고 갔잖아 됐어. 그만해!" 내가 그리 많이 운것도 아니고 오래 할아버지를 붙들고 있지도 않았다. 2분도 안되는 시간에 할아버지에게 못드렸던 말을 하며 우는데 아버지의 목소리에서는 짜증이 섞여 묻어 나오는 말투로 내게 그만하라 그러셨다. 할머니에게도 작은 어머니에게도... 할머니도 작은어머니도 그런 아버지의 말투에 상처를 받으셨다. 나도 맘이 편치 않았다.


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고 누워 계셨더라면 그렇게 우는 나를 나무라는 아버지에게 뭐라 하셨을까? 할아버지는 아마도 "거 참 놔둬라. 울게 놔두라." 라고 하시며 그냥 두셨을 것이다. 달래 주셨을 것이다. 나는 장례를 다 치른후에 아버지에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에 대해 직언하고 싶었다. 그 때도 할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라는 생각을 했고, 할아버지는 아마 안그러셨을 것 같은 마음에 그냥 참고 아무말도 안하기로 했다.


할아버지라면 그 때 어떻게 했을까에 대해 내가 할아버지라면 그렇게 하셨을거야 라고 매우 확신하면서 그렇게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할아버지에 대해 내가 잘 알기 때문에 할아버지라면 분명 그렇게 하셨을거라고 믿기 때문에 나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살아오셔서 끝까지 잘 인생을 마치셨기 때문에 할아버지처럼 한다면 나도 인생을 할아버지처럼 끝까지 잘 살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할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 있을 때 어떤 애들이 팔목에 고무 팔찌를 차고 다니는데 "WWJD"라고 쓰여진 것이어서,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 "What would Jesus do" 라는 것이다.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한국에서도 이 팔찌를 차고 다니는 사람들을 그 후에 많이 보게 됐는데, 당시에 나는 그것에 대해 그리 공감하지 못했다. 내가 저 팔찌를 차고 다닌다고해서 내가 주님과 같이 행동할 자신도 없었고, 그렇게 노력하다가 못하면 차고 있는 그 팔찌가, 내 팔목이 부끄러울 것 같아서 찰 생각도 안했다. 그리고 팔찌를 차진 않았지만 가끔 주님이라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뭔가 그리 피부에 와 닿는 그런 결론을 내려서 그 방향으로 행동하진 않았던것 같다.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할아버지를 잘 아는 것처럼 그래서 할아버지가 내렸을 법한 결정으로 하고 그대로 행동한 것처럼, 내가 주님과 같은 인생을 살려면 주님을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주님을 잘 아는 길은 주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수 밖에는 없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통해 주님과 대화를 자주 나누고, 교회에 나가 다른 주님의 자녀들에게는 주님이 어떻게 하셨고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도 들어보고... 이런 것들을 통해서 주님을 잘 알아야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주님이 하셨을법한 결정을 하며 인생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루며 What would Jesus do,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고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할아버지의 임종때 내가 곁이 있었더라면 할아버지는 "현수야, 세상을 살 때, 항상 주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행동하고 살아야 한다" 라고 말씀 하셨을 수도 있다. 이게 맡손자인 내게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지 않았을까.